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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킹을 꿈꾸는 싱어송라이터, CJ와 함께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금상 수상자 김지범 님제28회를 맞이한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지난 11월 새로운 유재하 동문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조규찬, 유희열, 방시혁, 김연우, 루시드폴 등 다수의 유명 음악인들이 이 대회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한때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유재하 동문들이
발 벗고 나서고, 2014년부터는 CJ문화재단이 참여해 유재하음악경연대회의 취지가 계속 이어지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째 되는 해로, 그 의미가 어느 해보다 남달랐습니다. 이번 대회 본선 진출자들의 실력이 다들 쟁쟁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후일담도 들려왔는데요. 그 가운데 김지범 님과 이호재 팀이 금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습니다. 앙코르 공연에서 관객을 이끄는 노련함과 무대 매너를 보여준 김지범 님을 만나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100대 1 경쟁률의 4수 합격생 “저는 될 때까지 합니다”
“엄마에게 면이 섰습니다.”
금상을 수상한 김지범 님은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수상 소감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김지범 님은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들어가기 위해 4수를 하고, 군 제대 이후에는 음악 하겠다고 집을 떠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 아들을 보고 과연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던 찰나! 김지범 님이 들고 온 기타가 답을 줬다.
“이번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기타를 새로 샀어요. 오늘 가져온 기타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썼고, 이번 대회에서도 이걸로
연주했는데요, 사실 뒤판에 금이 갔어요. 저 재수할 때 음악 그만두라고 엄마가 이걸 살짝 휘두르셨거든요.”
왠지 그 관계, 살벌해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자 관계가 ‘쏘 스윗’하다. 4수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수상했을 때도 가장 먼저 눈물 흘리며 기뻐한 분이 어머니라고. ‘엄마에게 면이 섰다’라는 수상 소감은 ‘더 이상 걱정 끼쳐 드리지 않을게요’의
동의어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기타를 처음 잡았어요. 그리고 진로를 결정했죠. 음악을 하겠다고요. 제가 분명한 목표를 세우니 부모님께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그런데 대학 입시 앞에서 3수, 4수까지 넘어가니까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사실 어마어마하다. 실용음악과 입시에 약 2천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싱어송라이터 전공 김지범
님은 거의 1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했다. 3수, 4수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될 듯 될 듯하면서도 간발의 차로 떨어졌을 때의
아쉬움은 그를 더 도전하게 만들었다.
“한 번 목표를 세우면 될 때까지 하는 성이에요. 4수로 넘어갈 때 저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죠.”
-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나에게 큰 도전
인생은 넘어야 할 산의 연속이다. 그토록 바라던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고 끝은 아니니 말이다.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분야를 선택한 이상 김지범 님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알려야 했다.
“군 제대하던 날 군복 입고 버스킹을 했어요. 저의 전역을 축하하고자 제가 기획한 공연이었는데요. tvN ‘수상한 가수’에 나오는
전상근 형이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버스킹이었는데도 관객이 많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게 공연에 대한 열의가 일었어요.
‘무조건 공연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김지범 님은 그동안 다양한 공연에 참여했다. 실용음악과 선후배 동창들과 공연을 기획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고 알려 왔다. 자신을 찾는 행사라면 마다치 않고 가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그는 그 중턱에도 이르지 못한 것 같아 답답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정말 옳은 길인가, 제대로 가고는 있나’ 하는 것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많은 기획 공연을 했지만, 저만의 만족이 아닌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등수 매기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권위 있는 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인정받았다는 뜻이니,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은 김지범 님이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지원한 동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산을 넘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알게 된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 작곡가들이 있는 유재하 동문 가수들을 늘 동경했다. 그러던 그에게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본선에서 노래하는 김지범 님
큰 도전 앞에서 그는 고민에 빠졌다. 기존 창작곡 중 공연에서 여러 번 불렀던 노래가 많은데, 이 중에서 한 곡을 선택할 건지, 아니면
새로운 노래를 만들 것인지 그게 고민이었다. 기존 창작곡은 이미 여러 기획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을 확인한 검증된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객의 반응에 앞서 냉정한 평가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예쁜 칼’이라는 단어 하나로부터 생각을
확장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그 단어의 출처는 다름 아닌 영화 <타짜>. 예쁜 칼은 극 중 정 마담을 이르는 단어다.
“한 사람의 치명적인 매력을 칼 같다라고 표현하는 게 신선했어요. 이걸 어떻게 노래로 표현할까 고민했죠. 마치 땅을 사놓고, 거기에 건물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처럼요. 그런데 마감 기간이 임박해지니 곡이 술술 나왔어요. 그 곡이 ‘뷰티풀 나이트’예요.”
▲제28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김지범 님
김지범 님은 ‘뷰티풀 나이트’로 이번 대회 금상을 수상했다. 금상 수상자들의 앙코르 공연에서 김지범 님은 경연장이 아닌 공연 무대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관객의 호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노래 한 곡으로 관객이 들썩이고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그동안 쌓은 많은
무대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노련함, 무대 매너를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 가리워진 길, 이제는 선명하게 보인다
▲ 늘 가지고 다니며 생각 날 때마다 가사를 적는다는 김지범 님의 악보
이번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후 김지범 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고. 그럴 만도 하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했으니까. 게다가 효도상 외에 처음 받아보는 상이 이렇게 큰 상일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 수상을 기점으로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분명히 달라졌어요.”
겉모습이 달라졌나? 아니, 개성 넘치는 그 스타일, 여전히 멋지다. 그렇다고 창법이나 음악 스타일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다.
“저 스스로를 보는 제 관점이 달라졌어요. 처음 기타를 잡았던 고2 때부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내면은 불안했죠. 제대로 길을 가고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요.”
이는 아마도 자신만의 색깔로 음악 세계를 구축해 가는 많은 음악인들의 고민일 것이다. 될 때까지 한다는 그의 신념도 가리워진 길
앞에선 지켜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흐릿하게 보이는 길을 신념 하나로 걷다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그 길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저는 멋진 슈트를 받았어요. 유재하음악경연대회 금상은 저에게 멋진 슈트와 같아요. 이제는 제가 가는 길을 더 확신하게 됐어요. 이런 슈트에 걸맞은 음악인으로 계속 성장해 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는 군에 있는 동안 매일 시를 한 편씩 썼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시가 몇 개의 수첩에 빼곡하게 남아 있다. 이걸로 언젠가 시집을 내고
싶단다. 자신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늘 준비하고 있다.
“음악은 시예요. 시는 음악이고요. 영화도 그림도 음악이 될 수 있고, 음악이 곧 영화와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과 인간 감정을 연결하는 고리가 음악 아닐까요? 다양한 예술 영역을 제 음악에서 시도해 보고 싶어요.”
김지범 님이 기타를 치자 손가락에 새겨진 ‘SOUL KING’이라는 글자가 눈앞에서 춤을 춘다. 블루스의 거장에게 붙이는 ‘킹’이라는
칭호를 자신 스스로에게 붙인 것이다. 언젠가 ‘소울 킹’으로 불리며 혼신의 힘으로 진심과 영혼을 담아 노래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담겼다. 지금 걷는 길이 희미하다고 느껴질 때 그의 손가락에 새겨진 단어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잠시 한눈을 팔더라도 그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알려 주는 이정표가 손가락에 단단히 고정돼 있는 것만 같다.
-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 김지범 님에게 팬심으로 사인 한 장 부탁했다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됐다. 스물다섯, 그는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떠났다. 유재하는 자신이 노래한 것처럼 후배들의 길을 열어 줬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그의 뜻을 유재하 장학회가 잇고 있다.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또한 올해로 28회를 맞았다. 유수한
음악가들이 이 대회를 거쳤고, 유재하 동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범 님은 돌아오는 봄에 EP 앨범 ‘ZEEBOMB의 봄’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지범 님의 음악 활동에도 따뜻하고 달달한 봄날이 찾아온 것 같다. 이번 대회로 유재하 동문이 된 여러 음악인들에게도 봄날이 찾아온 게 아닐까?
김지범 님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수상한 여러 청춘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나가며, 대중음악의 장을 넓혀 나갈 거라 생각하니 벌써 기대가 된다. 30년 전 청년 유재하가 그랬던 것처럼.